Do your best.
얼마 전 유명한 여성 강연자 한분이 논문표절 문제로 방송에서 일을 그만두었다.
그분은 직설화법과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 많은 젊은이들에게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녀는 ‘최선을 다하라’ 그러기 위해서 ‘인생에 성공한 자들의 책을 보거나 계획서를 체크하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그녀의 강의를 들을 때마다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있다.
바로 성공의 기준이다.
과연 무엇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이다.
과거, 개발도상국적인 생각 속에선 우선 배불리 먹고 사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보다 다른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먹고 살기 어렵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자살이 많지 않았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생존의 가치 혹은 궁극적인 삶의 가치는 행복에 있는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여 얼마나 많이 행복감을 느끼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에는 하루 세 끼니만 먹어도 행복했다.
즉 배불리 먹는 것 하나 만으로도 충분한 생존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잘 먹고 있기에 행복의 가치기준이 바뀌었다.
먹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보니 하루 중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적어졌다.
한달, 아니 일년 내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역치(threshold)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도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 만큼은 해결되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는 그녀의 이야기처럼 ‘어떻게 하면 성공할 것안가’란 질문보다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란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욱 옳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성공을 위하여 ‘Do your best'보다는 ’Do for your happiness'라는 말이 더욱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 하여본다.
필자는 시험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열심히 해!’라고 하기보다는 ‘열심히 해, 그런데 하는데 까지 하고 힘들면 쉬었다가자!’라고 말한다.
꼭 1등을 해야 하는 마라톤이 아니라면 천천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달리는 것을 즐기며 결승점에 도달하면 되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 schwartz는 사람의 의사 결정과정에 따라서 최선주의자(maximizer)와 만족주의자(satisficer)로 나누었고 누가 더 선택에 대하여 만족하는 지를 평가하였다.
최선주의자는 최선의 대안(best of best)을 찾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는 반면 만족주의자는 좋은 대안(good enough)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최선주의자보다 만족주의자가 더욱 자신의 선택에 만족한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더불어 그 이유로는 여러 대안을 검토하면서 인지능력이 고갈되어 만족감이 저하되고 최종 결정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결과에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하지만 필자는 그것보다 더 좋은 무엇이 있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만족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최선의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을 주지는 못하였다.
우리는 성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는 사회적인 화두로 강요받으며 살아왔다.
‘성공을 위하여’,‘부와 명예를 위하여’,‘남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등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선 중의 선’이라고 교육되어 받았다.
하지만 삶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행복’에 대하여서는 별로 배워본 바가 없다.
다만 위에 나열한 일들을 이행하면 행복해질 것 같은 막연한 믿음으로 강요받아 왔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것들이 행복과는 거리가 먼 다른 이야기임을 요즘의 사회현상을 보면서 알 수 있다.
간단하게 누군가에게 ‘지금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고 질문하였을 때 과연 몇 명이나 ‘네, 행복합니다.’라고 답할 수 있을까 말이다.
그렇게 내일의 행복을 위하여 노력하였건만 행복은 언제나 또 내일이 아니었던가
. ‘Do your best’는 내일이 아닌 지금의 행복을 위하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Do for your happiness'라면 쉬었다가도 되지 않을까.
지금 이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께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지금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아니라면 내일은 행복하십니까?’